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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시사 상식

(홍콩 시위, 홍콩 국가보안법 총정리) 3.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 - 2014년 '우산혁명'

 

2014928일,

 

홍콩에서 2003년 시위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가 발생합니다.

 

홍콩 시민들은 경찰의 최루탄을 막기 위해 우산을 펼쳐 들었습니다.

 

우산을 펼쳐 든 이 대규모 시위를 우리는 우산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이번에는 무슨 이유로 시위가 발생한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산혁명의 핵심 주장은 행정장관 직선제입니다.

 

 

2003년에 발생한 시위가 중국이 홍콩을 장악하려는 홍콩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성격을 띄었다면, 2014년의 우산혁명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성격을 띈 것이죠.

 

하지만, 사실 이 두 가지는 같은 맥락입니다.

 

 

행정장관을 홍콩 시민들이 직접뽑을 수 없으니 행정장관이 시민들의 의견을 대변하지 못합니다.

 

결국 중국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 행정장관이 될 수밖에 없고,

 

이런 ‘친중국’ 행정장관은 국가보안법같은 중국에 유리한 것들을 도입하려고 하죠.

 

 

 

따라서 행정장관 직선제국가보안법 반대나 사실상 민주화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합니다.

 

전에도 반복 언급했던 것처럼,

 

결국은 ‘홍콩을 장악하려는 중국 vs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홍콩’ 의 갈등 구조이죠.

 

 

 

 

자, 그럼 왜 '직선제 요구'가 나왔는지 알기 위해서는 현재의 '간선제'에 대해 알아봐야겠죠?

 

 

사진은 홍콩과 무관한 자료입니다.

 

'간선제'는 말 그대로 시민들의 1인 1표로 진행되는 '직접선거'가 아닌,

 

'소수의 선거인단'만이 투표하는 '간접선거'를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선거인단'이 그럼 도대체 누구냐는 겁니다.

 

홍콩에서 선거인단은 각 '직능대표'로 이루어집니다.

 

'직능대표'는 특정 직업군별로 사람들을 묶었을 때, 그 직업군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아래 그림과 같이 '부동산 및 건설업' 종사자들끼리 묶고, 그 직업군 내에서 투표를 통해 '부동산 및 건설업 대표'를 선출합니다.

 

 

 

이렇게 총 38개 섹터에서 '직능대표'를 선출하고, 그렇게 모인 '직능대표'들이 '선거인단'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그 '선거인단'이 투표를 통해 '행정장관'을 선출하는 방식이죠.

 

(물론, 종교계 인사들과 같이 '선출'이 아닌 '지명'되는 경우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위원, 입법회 의원과 같이 프리패스로 당연하게 선거인단에 포함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이 직능대표인 만큼 여기서는 그렇게 가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직능대표'들은 대부분 정치계, 재계의 거물들이고, 이들은 대부분 '친중파'라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뽑힌 '선거인단'이라 해봤자 1,200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2012년에 와서야 1,200명으로 늘어난 것이지, 그 전에는 800명이었습니다. 극히 초반에는 400명이던 시절도 있고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간선제'로는 당연히 '친중국 행정장관'이 뽑힐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우산혁명' 이전에도 홍콩 시민들은 계속해서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해왔습니다.

 

그러던 와중, 시진핑 주석이 2017년부터 직선제 해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이에 홍콩 시민들은 기뻐했지만, 기쁨도 잠시였죠.

 

 

 

2014년 8월 3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는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관련 지침을 확정하고 위와 같이 공개합니다. 

 

홍콩 시민들이 직접 투표하는 '직선제'를 해주는 대신, 그 후보들은 1,200명의 선거인단 중 절반인 600명 이상의 지지를 받은 2~3명의 후보로 한정한다는 겁니다.

 

결국, 겉으로만 '직선제'이지 친중국 후보 중에서 뽑으라는 거죠.

 

이렇게 되면 직선제를 하는 의미 자체가 없어집니다.

 

 

 

이에 홍콩 시민들은 격하게 반발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게 됩니다.

 

그것이 2014년 9월 28일 발생한 '우산혁명'입니다.

 

그러나, 점점 경찰의 진압은 점점 심해지고, 시위대의 동력은 점점 바닥나게 됩니다.

 

결국 2014년 12월 15일, 79일간의 긴 항쟁 끝에 시위는 막을 내립니다.

 

 

 

2003년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와는 다르게 '우산혁명'은 '행정장관 직석제'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산혁명'은 나름대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 세대'를 거리로 이끌어냈고,

 

크게 이슈화되면서 국제 사회에 경종을 울려 중국의 '일국양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는 겁니다.

 

 

 

지금도 여전히 '행정장관 직선제'에 대한 요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다룰 2019년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에서도 이 요구가 보이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