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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시사 상식

(홍콩 시위, 홍콩 국가보안법 총정리) 1. 홍콩 시위의 원인 - 홍콩의 역사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홍콩 국가보안법> 이슈가 뜨겁습니다.

 

그런데 저 같이 평소에 뉴스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이런 '업데이트 뉴스'만 보고는 전체적인 맥락이 잘 이해가 안 되실 겁니다. (그래서 저도 열심히 공부중...ㅎㅎ)

 

<홍콩 국가보안법>이 갖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도대체 어떤 맥락에서 이 법안이 제정된 것인지,

 

이에 앞서 이슈가 됐었던 <범죄인 인도법> 관련 홍콩 시위는 왜 터지게 된 것인지,

 

도대체 무엇이 200만 홍콩 시민들을 길거리에 나오게 만든 것인지,

 

저도 몰라서 공부했고, 아마 많은 분들이 정리가 필요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리해봤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번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이슈는 그 자체만으로 떼어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홍콩이 영국령에서 중국령으로 반환된 그 시점부터 현재까지 있었던 굵직한 이슈들이 모두 같은 맥락의 연속선입니다.

 

바로 '일국양제(一國兩制)' 입니다.

 

 

"하나의 나라, 두개의 체제" 라는 뜻인데요.

 

홍콩이 영국령에서 중국으로 반환이 되면서 '중국령'으로 된다 하더라도,

 

기존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고,

 

독자적인 헌법과 행정부, 사법부를 구성할 수 있는 '고도의 자치권'을 허가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이 이 홍콩의 '자치권'을 점점 침해하려고 하고, 홍콩은 '자치권'을 수호하려고 하면서 갈등이 생깁니다.

 

쉽게 말하면, 중국은 홍콩을 지배하고자 하고, 홍콩은 자유를 외치고 있는 셈이죠.

 

 

어떤 관점으로 보면, '일국양제(一國兩制)'에 대해서

 

중국은 "그래도 하나의 나라(일국一國)다"

 

홍콩은 "그래도 다른 체제(양제兩制)를 인정하라"

 

라는 입장으로 싸우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중국은 홍콩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려고 하고, 홍콩은 자유를 수호하고자 하는 양상인데요.

 

이번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문제뿐만 아니라, 아래 그림에서와 같이 '2003년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 '2014년 우산혁명', '2019년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까지 모두 '똑같은 맥락'에서 진행된 것입니다.

 

이번 사태를 이러한 맥락을 알고 본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가장 첫 번째 순서인 '홍콩 반환'에 관한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1. 1차 아편전쟁과 난징조약 (홍콩섬 할양)

 

19세기 영국에서는 홍차의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당시 영국은 청나라로부터 홍차와 비단을 사오고 은(silver)을 주면서 무역을 했는데,

 

홍차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다보니 막대한 양의 은이 청나라에 유입되면서 '무역적자'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청나라는 서양과 무역을 거의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였습니다. 서양의 문화가 유입되는 것도 반가워하지 않았고, 서양의 물품들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항구도 '광저우'에만 하나 딱 열고 여기서만 무역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영국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손해를 보는 무역을 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죠.

 

 

그래서 이때 영국이 꾀를 하나 냅니다.

 

바로,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아편을 재배해서 이를 청나라에 밀수출을 함으로써 적자를 메꾸려고 한 것이죠.

 

그럼 이런 구조가 되겠죠.

 

 

아편을 몰래 팔고 받은 은을 가져오면서 적자를 메꿀 수 있었죠.

 

아편은 마약이기 때문에 한 번 중독되면 빠져나오기가 힘듭니다.

 

그렇게 청나라에 아편 중독자들은 계속 늘어났고, 아편 수요도 마찬가지로 늘어납니다.

 

아편 수요가 늘어날수록 영국은 더 많은 부를 거머쥐게 됐죠.

 

이는 청나라에 두 가지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일단, 당연한 얘기지만 아편(마약) 중독자가 대량 발생하면서 사회가 혼란스러워졌죠.

 

또, 아편 사느라 은을 계속 주니까 은의 양이 계속 줄어든 겁니다. 

 

(은은 당시 청나라에서 세금을 낼 때에도 써야 하는데, 은의 양이 줄어드니 은의 가치가 상승하고, 농민들의 세금 부담이 몇 배나 커지게 된 것이죠.)

 

 

결국 청나라는 그 유명한 '임칙서'를 광저우에 파견해 아편 무역을 제재하라고 합니다.

 

임칙서(林則徐)는 광저우에 가서 아편을 모두 몰수하고 이를 바다에 모두 버리고 영국과 관계를 단절합니다.

 

(불태웠다고도 하는데, 실제로는 물에 석회를 섞었을 때 나는 열로 아편을 중화시켰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런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1840년~1842년까지 영국과 청나라와의 첫 전쟁, 1차 아편전쟁이 발발합니다.

 

 

 

하지만 영국군에 비해 청나라 군대의 화력은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청나라는 영국군에 패하고 1842년 8월 '난징조약'을 맺게 됩니다.

 

이 '난징조약'으로 인해 현재의 홍콩 중 '홍콩섬'이 영국에 할양되게 되죠.

 

 

 

2. 2차 아편전쟁과 베이징조약 (구룡반도 할양)

 

난징조약으로 항구도 더 많이 개방하고, 무역 거점인 홍콩섬도 얻었지만 영국은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난징조약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핑곗거리를 찾고 있던 도중, 1856년 그 유명한 '애로호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청나라에서 해적 단속을 하던 도중 영국 국적의 선박인 '애로호'에 대한 단속을 하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영국 국기가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영국 국기가 훼손된 것은 영국의 명예가 실추된 것이므로 영국은 전쟁을 선포합니다.

 

???

 

그렇죠. 말 그대로 진짜 트집이었습니다.

 

그렇게 2차 아편전쟁이 발발하게 되고,

 

이에 또 한 번 패한 청나라는 '베이징조약(1860년)'을 통해 이번엔 홍콩섬 위 구룡반도와 스톤커터스섬을 영국에 할양하게 됩니다.

 

 

3. 신계 지역 '99년'간 임대

 

영국에 할양된 '홍콩섬'과 '구룡반도'는 영국의 무역 거점으로 급격하게 성장했고, 곧 포화상태에 이릅니다.

 

인구는 많은데, 용수, 전기 등 인프라는 부족했죠.

 

또,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하면서 국방 문제도 생겼죠.

 

그래서 영국은 이런 인프라를 확충하고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 영토 확장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래서 영국은 1898년, 아래 초록색 부분인 '신계(New Territories)' 지역을 달라고 합니다.

 

 

청나라는 이를 거부할 정도의 힘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신계 지역을 줄 수 밖에 없었지만, 이때 청나라 측 협상 대표로 나갔던 '이홍장' 형님이 그 유명한 '99년 임대' 드립을 치게 됩니다.

 

 

영국도 "99년이면 거의 영구 임대지" 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 

 

그래서인지 이 제안을 수락합니다.

 

자, 이 협상이 1898년이었죠. 

 

그러니까 99년이 지나면 1997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이때 홍콩이 중국령으로 반환됐습니다.

 

어찌보면 이홍장 형님의 '99년 임대' 드립은 그냥 드립이 아니라 신의 한수였죠. 

 

 

4.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탄생

 

이후 1941년부터 1945년까지 2차 세계대전 당시 잠시 일본이 먹었던 것을 제외하면,

 

홍콩은 계속 영국령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49년, 중국 본토에서는 '국공내전', 즉 국민당(장제스) vs 공산당(마오쩌둥) 의 싸움이 발생하고,

 

마오쩌둥 공산당의 승리로 중국에는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인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게 됩니다.

 

공산당 일당독재가 들어서게 되면서, 중국 부자들은 대부분 홍콩으로 튑니다.

 

그렇게 홍콩은 엄청난 부를 쌓으면서 번영하게 되죠.

 

그런데, 문제는 곧 1997년 홍콩 반환하기로 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5. 홍콩 반환 협상

 

1982년 9월, 반환 시점이 약 15년 정도 남은 시점에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와 중국의 '덩사오핑' 주석이 만나 홍콩 반환과 관련된 첫 공식 회의를 가지게 됩니다.

 

처음에 마거릿 대처 총리는 조금 더 연장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요구하지만,

 

덩샤오핑은 오히려 임대한 '신계 지역'이랑 '홍콩섬', '구룡반도'도 같이 내놓으라고 반격합니다.

 

청나라 시절 불평등조약으로 맺어진 것이기 때문에 무효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자, 여기서 홍콩을 반환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첫째, 1842년 4월~6월 영국은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으로 엄청난 군사적, 경제적 타격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여기서 중국과 전쟁이라도 난다면 영국이 받는 타격은 어마어마했죠.

 

둘째, 중국은 당시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미국, 일본 등 많은 국가들과 수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중국에게 등을 돌려서 좋을 게 전혀 없었죠.

 

 

 

그러면, '홍콩섬'이랑 '구룡반도'는 어차피 자기네들이 영구적으로 먹은 거니까 임대 지역인 '신계 지역'만 돌려주면 안 되나?

 

네, 어차피 용수와 전기 공급 등 대부분의 '인프라'는 '신계 지역'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홍콩섬'과 '구룡반도'는 번화가이자, 도심 지역이었고요.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갖고 있어도 어차피 '신계 지역'에서 용수와 전기 공급을 끊어버리면

 

나머지 두 지역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마거릿 대처 총리는 홍콩을 전체 반환을 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거릿 대처 총리는 걱정이 됩니다.

 

홍콩이 중국으로 넘어가면 공산화될 게 뻔하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이에 대해 덩샤오핑이 '일국양제' 드립을 꺼내든 것입니다.

 

 

이렇게 '일국양제'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되고, 10여년의 준비 기간 끝에 1997년 드디어 홍콩이 반환됩니다.

 

홍콩 반환식

 

아직도 홍콩은 이 '일국양제'라는 개념에 따라 중국 본토와는 전혀 다른 정치/경제 체제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 본토는 일당독재/공산주의 체제이지만, 홍콩은 민주주의/자본주의 체제입니다.

 

또, 중국 본토와는 다른 홍콩만의 법률인 <홍콩 기본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또, '행정장관'이라는 '홍콩의 대통령격'을 직접 홍콩 사람들이 뽑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했고, 그렇게 돼야 맞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홍콩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게 됩니다.

 

그게 2003년에 한 번(국가보안법 반대 시위),

 

2014년에 또 한 번(우산 혁명),

 

2019년에 또 한 번(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그리고 이번에 또 한 번(홍콩 국가보안법 반대) 터진 거죠.

 

이게 모두 같은 맥락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자, 그럼 다음편에는 위의 사건들을 본격적으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